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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권기봉,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알마, 2009

 이 책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한사람의 낱적이와도 같다. 어딘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마치 자기 인생에 주어진 소명처럼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며 마음으로 몸으로 일구어낸 땀의 흔적이다. 이런 책이야말로 그 책의 가치를 정함에 있어 문장이나 학문적 성과에 천착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예전에 『현산어보를 찾아서』라는 책을 보며 몇번이나 감탄했던 적이 있다.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기도 하고 엇비슷한 나이에 그러한 결과를 얻어낸 사람에 대한 경외감과 질투심이 묘한 기분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 책 또한 가벼운 책읽기에서 시작했지만 책장을 넘기며 하나하나의 꼭지에 펼쳐놓은 장소를 보며 그 의미에 대한 저자의 발길에 같이 호흡하고 싶어진다. 특히 우이동 '육당 최남선의 고택'이 그의 답사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헐려버렸다는 데에서 느낀 안타까움은 한동안 멍하니 책에 실린 사진과 그의 글을 멍하니 바라보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잊혀져 가는 안타까운 기록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금의 내 기억속에 흐릿하게 남아있는 흔적들이 지금은 그 어디를 가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불과 30여년전의 공간과 시간이 지금 여기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는 건 우리의 역사에서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조건 보존하고 남겨야 한다는 당위론은 아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속에서 잠시 발걸음을 내려두거나 땅위에 딛고 서서 잠시 숨 한번 고를 여유조차 우리에게 없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이도 이런것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저자와 같은 이들이 아직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