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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김용규,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휴머니스트, 2010

 

 작년에 이어 3월은 긴 호흡을 가지고 두꺼운 책을 읽는 시간인가 보다. 아무래도 3월은 새롭게 시작하는 때라 그런지 두꺼워서 평소에 도전하지 못한 책들에 투자하는게 좋을 듯 싶다. 작년엔 이맘때쯤 『젠틀 매드니스』를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올해는 책의 두께는 조금 얇지만(그렇다고 해도 맺음말까지 811p) 내용이 내용인지라 거의 3주 가까이 책을 읽었다. 그 중에 이것 저것 다른 책들까지 함께 봤으니 온전하게 아침시간을 이용해서 3주 정도면 꽤나 빠른 속도로 읽은 편이 아닌가 싶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예전만큼 집중도나 몰입도가 떨어져서인지 책의 내용을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실 읽으면서 정리를 하지 않고 나중에 정리하려다 보면 책의 내용은 잘 기억해내지 못하고 이러 저러 겉도는 이야기만 하다 끝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신에 대해 그간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겠지. 하지만 오랫동안 신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서도 '그래도 어딘가는' 이라는 생각을 지워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책의 부제처럼 2000년 동안 서양문명을 이어온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통해 서양의 철학과 문화를 다양하게 책속에 녹여내는 저자의 솜씨는 감탄을 넘어,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미 그의 책『영화관 옆 철학카페』『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등을 통해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 책을 통해 올 한해 김용규에 대한 전작주의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신의 존재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신앙을 가진 자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 일테고 비신론자에게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부질없는 짓일 테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존재 너머의 그것 속에서 우리의 실천의지가 무엇보다 더 중요할 테니까 김용규의 표현대로 라면 '신의 유일성은 기독교가 어떤 경우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고 또 포기해서도 안 되는 신의 속성입니다. 오히려 그 안에 내재한 무차별적 포관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인류 모두가 "나란히 그리고 더불어" 상호내주적. 상호침투적으로 실존하는 인간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야 하지요. 그렇지만-또한 그렇기 때문에-그 안에 불가분 내재되었다고, 심지어 기독교인조차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배타성과 폭력성은 마땅히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말할 나위 없이 신의 유일성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올바른 이해와 교회의 전향적 선포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합당한 실질적이고 제도적인 행동과 조치가 뒤따라야 하지요.' 신의 존재와 인식보다는 자기 부정속에서 출발하여 물론 그것은 존재의 부정과는 다른 현실을 인식하는 태도의 부정속에서 변화하고 행동하며 나란 존재를 뛰어넘어 그에게 기대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내적 외적 초월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앞으로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될 부분이긴 하지만 변화와 욕망사이의 줄다리기 속에서 내가 과연 어떤 자리에 서게 될지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