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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이건섭 글, 박우진 사진, 『20세기 건축의 모험』건축가 이건섭과 책을 타고 떠나는 현대 건축과 디자인 여행, 수류산방


 오랜만에 참 예쁜 책을 만났다. 물론 수류산방이라는 출판사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졌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지만.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형식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고 이 책이 주는 형식적 감수성에 금방 젖어들어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참 맛깔나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가끔 원서를 보면서 우리의 출판의 수준은 '왜 이럴까'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은 한꺼번에 사라져버렸다. 나만의 생각일까 싶어 책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그런 그의 생각 역시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참 잘 빠진 책이다.

 책의 만듦새 못지 않게 책의 내용 또한 그에 걸맞게 유려하다. 건축에 관한 책을 즐겨읽는 편이다. 하지만 그간 비전공자로서 건축의 흐름이나 역사에 소홀한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인문학적 건축읽기 책을 좋아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서양 건축의 흐름이라든지, 건축에 관한 책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겨우 가우디 정도의 동굴속에 있다가 갑자기 밝은 광장으로 나간듯한 기분.

 책의 내용속에 건축과 그리 연관 없을것 같은 칼비노의 책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만나는 것은 또 다른 흥밋거리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아쉬움 중의 하나는 많은 책들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덕분에 나의 어학적 무능함에 대해 다시 한번 좌절하고 만다.

 건축은 소통이다. 건축은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광고에 나오는 문구처럼 우리들의 생활에 뿌리내리는 것이 아닐까. 공간을 차지하고 서있으면서 그 공간속에 있는 사람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만들어 나가는 행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가진 모든 것을 소년에게 주었다면, 그 나무를 이해하고 의미를 주는 것은 소년이었으니까. 우리 역시 집을 도시에게 수많은 이야기꺼리들을 전해주고 들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나의 집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남겨 두었을까. 흥미롭게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대한 기억들은 그리 많지 않다. 어린 시절 골목길에 욕심쟁이 할어버지, 그리고 장독대, 마당, 화장실, 깨진 유리에 덧대인 조각들, 지붕위의 안테나와 빨래줄 이 모든 것들은 나와 그들의 이야기였다. 지금의 집에 도시에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으면 한다.

 조용히 자리잡고 이야기하며 곱씹을 그런 공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