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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강신주, 『철학 삶을 만나다』, 이학사, 2007

 

"우리는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보조국사 지눌의 말)

  우리에게 달아날 곳은 없다. 그래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 곳에서 살아야만 한다. 살아야만 한다는 당위는 누구에게나 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문제인것이다. 무엇에 대해서 고민을 가진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또 다른 징표임에 틀림없다. 내 몸에 생채기가 나고 그곳에서 피가 흐르면 문득 '나 아직 살아있구나!'라는 미세한 떨림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지금 여기 바로 '나'란 존재가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확인받고 싶어한다. 문득 확인되지 않을 때 그 정처없음에 치떨려 보지 않은자 그 어디에 있는가.

 '나의 존재에 대한 타자의 영향력은 신비스럽기만 하다. 그것은 미지의 것이라기보다는 인식될 수 없는 것이며, 어떤 빛에 대해서도 저항적인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에서 암시되고 있는 바는, 타자가 나와 더불어 공동의 존재에 참여하고 잇는 다른 자아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타자와의 관계는 공동체와의 전원적이고 조화로운 관계가 아니며, 우리가 타자의 입장에서 봄으로써 우리 자신이 그와 유사하다고 인식하도록 만드는 공감도 전혀 아니다. 타자와의 관계는 하나의 신비와의 관계이다. 그것이 그의 외재성이며 혹은 그의 타자성이다.' (『시간과 타자』, 레비나스)

 타자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한가. 오로지 나의 시선으로 그를 가두는 것은 아닌가. 답은 책속에 있지만 그 답은 현실속에서 왜 이리 어려운 것인가. 내 시선이 아닌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에게 무한한 자유를 열어준다는 것. 그것은 내 욕망을 벗어내는 것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난 욕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롭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정호승 시인은 이야기한다. 나 아직 사람인가 보다. 외로운 걸 보니....

내가 이룬 섬의 그 어는 언저리에서
비둘기 한 마리 밤바다로 떠나가지만
그대 어느 곳에 또한 섬을 이루고 있는지
어린 새의 그 날개 짓으로
이 내 가슴속 까만 가뭄을
그대에게 전해줄 수 있는지.
                                  『섬』, 노창선

 너는 그래 섬이었다. 나 역시 섬이었고. 너에게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어두웠고 차가웠다. 갈 방법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가고 싶었다. 끝내 이루어지지 못할 꿈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것이 나의 존재가치였으니.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가족, 국가, 자본주의로 요약되는 삶의 한경에 길들여져 있었다고 한다. 나 역시 철저하게 길들여져 있었고, 그러하기 때문에 길들여짐에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현실이다. 그 현실속에 내던져 있을 때 몸과 머리는 따로 움직인다. 그것 사랑이나 현실의 존재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니체는 '주체란 내면화된 공동체의 규칙, 즉 초자아를 거부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한다. 나는 언제나 초자아를 거부할 수 있을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철학책. 하지만 이 책만으로 끝내기에 뭔가 아쉬움이 남는 책. 그렇기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책의 뒷부분에 소개된 '더 읽을 책들'을 통해 조금 더 철학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나의 몫이다. 아마 이 책을 통해 읽게 될 책은 니체 『도덕의 계보학에 대하여』


마루에서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