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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김선우,『내 입에 들어온 설탕같은 키스들』 - 김선우 시인에게서 온 편지, 미루나무


아름다운 것은 그리움이다
흔들리며 움직이는 섬세한 빛이다
영혼 쪽으로 보다 가까이다가가라
시인이여
뜬구름에 정처 없이 실려서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영원한 그리움, 영원한 고통
투쟁하는 것
이것이 시인의 할 일이다
- 「시인의 사랑」, 칼 마르크스

 

김선우의 「사물들」에서 받은 섬세한 그의 필력에 사로잡혀 김선우의 이름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얼마전 그의 소설 「나는 춤이다」역시 그런 이유 때문에 쉽게 손이 갔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입에 들어온 설탕같은 키스들』을 처음 접했을 때 왠지 모를 낯 뜨거움과 세속적 편린이 느껴지는 것은 왜였을까.그건 이 책속에 너무 많은 사랑에 관한 지극히 여성적인 취향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남자였기 때문에 느끼기 불편함에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곱씹어볼수록 느껴지는 김선우의 삶에 대한 더께들은 쉬 가시지 않았다. 이 책을 읽는 밤 하늘에서 꽤 많은 눈들이 내렸다. 그 눈과 책을 마주하는 순간 난 ‘입에 착 감기는 욕을 한번 내뿜고 싶었다.’ 물론 내 입에서 그 욕이 나가는 순간 그 감기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없으리라는 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었기에 더욱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사회의 남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랑, 가슴저림, 눈물, 그리움 등등의 것들에 대해 말한다는 것 자체가 나의 존재성을 부정하는 일이 될테니까. 간혹 드라마를 보다 다큐멘터리를 보다 영화를 보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감추려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 눈물이 나의 나약함을 나타내는 듯. 다른 사람 앞에서 숨겨야만 하는 것들이었을 테니까. 이 책에서 나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들을 보았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에게 다가오는 내 무의식의 기저에 담겨있는 나의 욕망들을

아주 오래전에 참 좋아하‘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보고 싶었다. 시간은 이미 회사를 끝날 시간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아이 집 앞에서의 기다림이었다. 그 아이 집 골목길 모퉁이에 기대어 한참을 기다렸다. 시간은 지날수록 ‘왜 안올까’하는 초조함은 사라진 채 난 그 기다림을 즐기고 있었다. 간혹 혹시 집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공중전화로 달려가 보면 들려오는 ‘빈 집의 수화음’.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들을 즐기고 있는 내 모습 속에서 어쩌면 내가 기다리는 것은 그 아이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집에 가려 골목길에서 발을 떼고 한참을 걸어가면 느껴지는 아쉬움에 다시 발을 돌리기를 몇 번. 그렇게 기다리던 시간이 어느 덧 12시를 가르칠 무렵. 그 아이가 어둠 속 가로등 밑에서 나타났을 때 느낀 그 반가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난 그 아이에게 ‘그냥 보고 싶어 지나는 길에 들렸어’라는 말을 던지고 6시간의 기다림 속에 채5분도 못다 한 시간을 마주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 5분의 시간이 지금까지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는지는 기다려본 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깊이와 넓이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몸’에서 느껴지는 것임을.

세월이 흐른 지금. 어느 덧 나이가 들어 모든 것들이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지금에도 내 기억 속에 그 5분이 덧댄 상처로 남아있음은. 오늘 김선우의 책을 읽으며 그 ‘기다림’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타인의 시선이 존재하는 곳에서 엉엉 그렇게 큰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사람, 체면이나 자존심 같은 거 아랑곳없이 자신의 느낌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 당신은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힘내요! 다시, 사랑하세요! 햇빛 쏟아지는 거리로 나가요! 하늘을 봐요!

나는 가끔 그리워요. 카페 안이 떠나가라 엉엉 큰 소리로 우는 남자나 여자들. 이상한 취향인가요? 세상은 너무나 쿨해지고, 나는 이제 쿨한 게 조금 지겨운가 봐요.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 쿨한 척 하는 관계들 말고, 큰소리로 우는 사람들이 때때로 그리워요. 마음껏 울고 햇빛 속으로 한발 내디딜 때, 정말로 쿨한 다음 사랑이 도래해 있는 거 아니겠어요?

껴안을 수 있는 당신이 내 옆에 존재하기에 두 팔을 크게 벌려 껴안습니다. ‘나중이면 너무 늦어. 지금 껴안아 줘!’ 크게 말합니다. 부끄럽지 않아요. 무엇을 껴안고 강을 건너왔든 강을 건너 대지에 두 발을 디딘 순간 사랑은, 인생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니까.

다만 내가 강을 건너온 당신이 나를 껴안고 울고 싶어 할 때 내가 모른 척하지 않기를 빕니다. 당신이 껴안고 운 곰인형도 가끔 울고 싶을 때 있을 걸요? 당신의 두 무릎도. 당신에게 어깨를 빌려준 친구들과 당신의 당신도. 그 당신의 당신도.                    <김선우의 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