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발소에 두고 온 시

이민희, 「조선을 훔친 위험한 훔친 책들」 - 조선시대 책에 목숨을 건 13가지 이야기, 글항아리

누군가가 나의 마음속에 들어왔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 무언가를 그가 가져갔다(훔쳐갔다)는 뜻이다. 그의 무엇들이 내 혈흔속에 들어와 강한 흔적들을 남기는 행위. 그 흔적들 속에서 나는 열병을 앓아가는 것이다.

일터에서의 내 책상 자리는 아침이면 커텐에 의지해 햇빛을 가려야만 한다. 가끔 덜 쳐진 커텐사이로 햇볕이 나를 침범하면 그 은은함에 기대 조용히 머리를 의자에 기대며 긴 조으름 내어편다. 의자에 잔뜩 늘어져 책이라고 한권 꺼내 손에 들고 향기 진한 커피라도 있으면 그야말로 내 세상이 된 듯한 느낌을 느낀다. 

엔도형이 나에게 밀려준 두권의 책.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 「通文館 책방 비화」

그 중에서 가볍게 읽을만한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부터 시작했다. 조금은 가벼움 속에 묻어있는 소소한 이야기꺼리들이 독서욕을 자극한다.

하나 하나 넘어가기는 쉽지만 틈틈이 책을 덮을때마다 느껴지는 책에 관한 그들의 삶들이 나에게 오롯이 전해질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먹먹해짐은 김수온처럼 집 안에 틀어박혀 책만 읽던 책벌레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마음씀씀이가 아닐까. 책만 읽던 그가 불가피한 일로 집밖에 나가게 되어 나뭇잎이 떨어지는 계절인 것을 알아차리고는 ‘어느새 가을인가?’라며 시 한 편을 떠올렸다는 일화가 정해질 정도라는 이야기속에서 ‘과연 나는?’ 어떠했는가라는 자문을 던져본다.

책 속에 소현세자의『심양장계』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이 책에는 사유보다는 운명이 앞서 있는 경우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그 몸통을 감고 있는 신산스럽고 통탄스러운 운명의 낙인으로 인해 우리에게 쓰라림을 안겨준다. 지울 수 없는 아픔을 떠올리게 하는 책.’

자신의 인생을 역사의 소용돌이속에 밀어넣은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소현세자가 나에게 떨림을 주는 것은 그러한 소용돌이 속에 자신을 밀어 넣었다는 것보다는 그가 느꼈을 선연한 감정의 덩어리들이다. 세자로서의 삶. 포로가 되어 타국에서 살아야만 했던 그의 자의식. 그러한 삶속에서도 책과 마주하고 끊임없이 무언가와 조우하려고 했던 그의 몸. 그 몸의 기억속에 오롯이 드러나야만 하고 드러날 수 밖에 없었던 생각의 뿌리들이 생각난다.

그의 몸속에 외로움이 나에게 전해질 때 나는 그 외로움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 외로움의 정도가 나에게 온전히 전해질지 모르지만. 그 외로움이 지금의 나에게 어쩌면 감정의 공유로서의 절절함이라고 할까.

책이 어디 있느냐고 손이 묻길래
하하하 크게 웃으며 나는 나의 배를 가리켰네
손님이 믿지 않을까 다시금 두려워
줄줄 외워 보이니 흡사 둑 터진 듯 쏟아졌더라
내 이리 많은 책 가지고도 굶주림 겨우 면하니
어찌 자루에 곡식 그득 쌓아놓은 이들과 같을까

조선후기의 위항시인이자 장서가인 조수삼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