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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윤성희,『거기 당신?』, 문학동네


제가 가슴속에 담아두고 싶은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흙으로 구워 만든) 화로, (누군가 버린) 풀무, (순도 100%의) 강철, (손때 묻은) 망치 …  불이 꺼지지 않도록 열심히 풀무질을 하고, 그 불에 강철을 달궈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다운 붉은 빛을 만들고 싶습니다.  눈에 재가 들어가면 눈물이 나고, 손등에 불똥이 떨어지면 상처가 남겠지요. 물집이 잡힐 때까지 붉게 달궈진 철을 두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묻겠지요. 무얼 만들고 싶으냐고. 결투를 할 그날을 위해 검 한 자루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겠습니다.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그저 두드리는 것. 그것만이 제가 할 일 같습니다. 두드리다 지치면 화장실에 홀로 앉아 노래를 부르고, 또 두드리다 지치면 소박한 음식을 배가 부를 때까지 먹고, 또 두드리다 지치면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몰래 훔쳐보겠습니다. 어리석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결투란 이것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이미 거울을 보아버린 사람이니까요. 겁쟁이니까요, 거울 너머, 나와 당신들의 시선 너머, 가로등이 비추고 있는 저 국도변의 길 너머로 발걸음을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과거형으로 위로하지 않겠다고. 현재형으로 그리워하지 않겠다고. 미래형으로 희망을 말하지 않겠다고. 그저 가만히 당신들의 상처를 두드리고 또 두드리겠다고.

현대문학상 수상소감중에서


아저씬 손이 왜 그래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여자아이가 그를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아이가 입은 분홍색 원피스를 더럽혔다. 하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얘야, 독바로 걸었는데도 너도 모르게 넘어질 때가 있지 않니? 여자애는 스타킹을 벗어서 무릎에 난 상처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여기요. 지난번에 넘어졌어요.

이것도 그런 상처란다.

그는 빨간색 자전거를 꺼내 아이에게 주었다.

아저씨 선물이다. 한 시간만 타거라.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자전거들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주 웃었다. 그는 비가 오던 날을 떠올렸다. 왜 미친 듯 창문을 두드렸지? 그런 의문이 잠깐 들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는 왼쪽 눈동자를 지그시 눌렀다.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가슴에 걸린 것 같았다. 냉기가 느껴져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구름은 바람을 타고 흐르다가 여자아이가 먹던 아이스크림 모양으로 변했다. 아이스크림이 녹더니, 그의 입 속으로 떨어졌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다. 76~77


이름 없는 사람들 (익명성)

 

 윤성희의 소설 『거기 당신』에서는 무료하고 지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 여자, 그 남자, P, H, Q, W 등 이름다운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 인물들은 소설 속의 문장처럼 ‘아무곳에도 끼울 데가 없는 나사와 같은 존재’들이다. 때로 다른 친구로 착각하거나, 담임이 학기가 끝날 무렵에 네 이름이 뭐지 하고 물어보는 유령과 같은 존재들이다.

 

 무엇 때문에 작가는 이런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것일까! 이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사회속에서 내가 사라진다고 한들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지구 건너편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지진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가도 사망 몇 명으로 보도되고 마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 아닌가

 

 그곳에 우리가 있다. 또 다른 그 여자, 그 남자의 모습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

고속도로위에 늘어선 차들의 행렬과 출퇴근의 인파속에서 우리들의 이름은 없다. 김대리, 최과장, 누구엄마, 당신......



그들이 가진 슬픔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에는 아픔이 있다. 세상살이라는게 다 그렇듯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다. 병원에 가면 자신만이 이 세상 고통의 전부를 뒤짚어 쓰고 있다. 나의 고통 이외의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슬픔과 고통을 가지고 있다. 태어나면서 부모를 잃거나, 사랑했던 연인이나 친구들이 죽는다거나 또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었던 동생들이 그를 외면해 버리는 상황이 와도 그들은 절망하거나 울지 않는다. 너무나 덤덤하게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한 슬픔이 그들에게 없었다는 듯. 나와는 상관 없다는 듯 그렇게 지나가 버린다. 다른 소설에서라면 몇 번씩이나 울게만들 상황이나 장면을 이 소설에서는 간단히 몇마디의 말로 설명하고 말아버린다. 작가는 그들의 불행을 부각시키거나 강조하지 않고 보여주기만 한다. 그들의 슬픔을 위로해 주고자 하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묵묵히 일어나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보인다.


슬픈 이야기도 슬프지 않게 이야기하고, 굳이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도 전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얼마나 슬프겠느냐 충동질하고 슬퍼해야 하는데라고 되뇌이지만 그들은 그저 삶의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슬픈 인생에 절망하거나 좌절하며 인생을 버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슬플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은 잘 살것 같다. 웃으면서 나에게 손짓 한다. 


윤성희의 문장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님은 ‘윤성희의 문장에는 부사와 형용사가 없다. 장면이 제시된 다음 설명이 뒤따르되, 논리적 맥락을 암시할 뿐 건너뛰기로 되어 있다.’

윤성희의 소설을 읽다 보면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그 불친절함속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빠져들게 된다. 마치 내 이야기가 아닌 제3자의 이야기를 하듯 이랬어, 저랬어 하고 문장을 이어간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라고 한다. 윤성희의 문장에 빠져드는 건 이 호기심 때문은 아닐까 소설을 읽을때 우리는 다음에는 어떤 상황이 일어날까. 이 주인공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갈까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어 가듯 윤성희는 이 호기심을 문장을 통해 이루고 있는 듯 하다.


 독자에게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문장을 완성시켜봐 하고 손짓하는 듯 하다. 문장에 수식어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불친절함속에 나를 끌어들이고 있다. 무얼까 생각하는 틈에 나는 문장속으로 들어가 있다.



음식


 「유턴 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에서 슬픔이 있는 자들(Q-지하철기사였으나 자살하는 여자와 눈이 마주침, W-학창시절에 유령으로 불릴 만큼 존재감이 없었다, 나-쌍둥이 누나가 죽고 아버지도 기차안에서 죽음)이 모여 보물을 찾으러 갔으나, 찾지 못하고 모여서 만두와 쫄면을 판다. 「어린이 암산왕」에서 암산왕이었다는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 사내는 녹슬어버린 메달을 삽립호빵으로 생각하며 기억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 남자의 책 198쪽」에서 밥맛 좋아지는 쌀을 찾는 그녀등


 이 소설의 단편들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음식들과 연관되어 있다. 거기에 나오는 음식들은 요란한 음식들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음식들. 화려한 불빛과 장식으로 수놓아진 TV속의 그림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휴게소를 돌아다니며 어묵지도를 만들고, 분식집을 통해 새로운 삶을 이어나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낀다.

 

 먹고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잊기 위해 먹으며(밥을 먹으면 쓸쓸함이 사라진다는 인물의 말처럼) 타인들과의 식사를 통해 그들을 슬픔을 이겨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통과 나눔


 똑바로 걸었는데도 넘어질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회의가 들때가 있다. 앞만 보고 걸어 왔는데, 이것만이 내 인생의 전부라며 살아왔는데 그것이 없어진다면 우리의 인생은 어떨까! 정말 똑바로 앞만 보고 걸었는데 길에서 벗어난 경우도 있고 넘어질때도 있다. 소설속의 인물들은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체 안에서 세련되지 못하고 정상적이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울적하고 안정적이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 “오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갔지요, 내일 하루도 이렇게 지나가겠지요. 모레도 이렇게 지나갈수 있겠지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존재속에서 외로움을 확인하며, 상처를 서로 껴안는다. 혼자만의 삶속에서 갇혀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희망을 가져라가 아니라 그들은 삶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요즘 소설을 읽고 나면 항상 머릿속에 남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하지만 그 말 속에 들어있는 울림이 소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끈질긴 마력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이란 줄거리를 가진 서사적 구조속에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급박하게 돌아가고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은 현대사회속에서 더 이상 이전의 인간관계는 의미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세상을 산다는 것은 혼자의 몫으로만 남겨진 것은 분명히 아니다. 나와 다른사람의 관계맺음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것이 삶의 일부가 아닐까!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어울려서 살아간다는 것의 다른 의미임에는 분명하다.


요즘의 소설에서는 분명히 명확한 인간관계나 교훈을 찾기 힘들다. 더 이상 우리에게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다. 윤성희의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애쓰지 않는다. 다만 보여줄뿐이다. 때론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영화같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늘 벌어지지 않는가


어쩌면 윤성희의 소설에 나오는 비정상적인 인물들이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거기 당신?』을 읽으며 또 다른 나의 모습, 내 안에 숨어 있는 나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가 내 마음에 숨겨진 나를 찾아보는 새로운 길찾기라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새삼 확인해 본다.

좋은 작가를 만났다. 아직 많지 않은 소설을 쓴 작가이지만 분명 차기의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다음에 윤성희가 어떤 소설을 들고 우리앞에 나올지 기대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