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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최종규, 『사진책과 함께 살기』, 포토넷, 2010


고종석의 『독고준』, 새움, 2010 책 95p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봄비

'민족문학작가회의 순천지부에서 내는 ≪사람의 깊이≫5집을 읽다가 남지수 씨의 <아내의 봄비>라는 시를 만났다. 그 둘째 연은 이렇다.

시장 벗어나 버스 정류장 지나쳐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 조각 뒤집어쓴 할머니

몇 걸음 지나쳐서 돌아보고 서 있던 아내

손짓해 나를 부릅니다

냉이 감자 한 바구니씩

이천 원에 떨이미 해가시오. 아줌씨

할머니 전부 담아주세요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봄비 값까지 이천 원이면 너무 싸네요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삼천 원 꼭꼭 쥐어주는 아내.

이 책을 쓴 최종규에게 나는 냄새라고 하면 너무 지나칠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책을 읽어보면 사랑이 물씬 묻어난다. 그 사랑이라 함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자, 자신의 삶에 대한 녹록한 숨결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올곧게 무엇인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그려 나가는 모습이 책 속에 담겨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사회의 평가가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진에 대한, 가족에 대한, 인천에 대한, 그리고 우리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진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부끄럼을 느낀다는 건, 아직 나에게도 그런 연민이나 열정들의 찌꺼기들이 조금은 남아있는 것은 아닌가 자위해 보지만 글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짐은 어쩔 수 없다.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또 책을 통해서 또 다른 책을 만나게 되는 건 가장 축복받은 책읽기 방법중의 하나이다. 이 책을 통해 또 여러권의 책이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아마 그 중의 일부는 내 책꽂이에 언젠가 꽂혀 있게 될것이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처럼 헌책방을 두리번거릴지도 모른다. 10년전 집 앞에 자주 가던 헌책방이 있었다. 지나는 길에 들러 책 한 두권씩 사서 옷 속에 품고 갔던 기억이 난다. 자주 가다 보면 헌책방의 주인들이 가지는 자기만의 책 분류에 대해 조금씩 느낌이 온다. 그러다 보면 오래 머무르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그 곳에서 찾게 되는 보물같은 책들은 소소한 느낌이라 할지라도 꽤나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한 참을 그렇게 다니다 보니 언젠가 주인 아저씨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좋은 책을 어디서 그렇게 찾아 뽑아 가는 거야!' 그 주인 아저씨의 그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려, 그 헌 책방을 들릴때마다 아저씨를 유심히 쳐다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헌책방에서 비오는 날 비가 온다며 나에게 말을 걸던 그 아가씨의 떨리는 듯한 음성 역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