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발소에 두고 온 시

윤대녕,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문학동네, 2010


아침 저녁으로 날이 꽤나 쌀쌀해졌습니다.

담배를 피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가면 그늘속으로 들어가던 때와 다르게, 이제는 햇빛 따뜻한 양지마루에 기대어 앉습니다. 어제는 햇빛이 너무 따스한 나머지 책을 들고 올라가 한참이다 햇볕을 받으며 책을 읽었습니다. 오른쪽으로 따스한 햇볕이 몸을 데워주네요. 마치 욕조위에 몸을 맡긴채 멍하니 천장을 보며 누워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두편의 단편을 읽었습니다. 「상춘곡」과「3월의 전설」.
이 글들은 소설이라기보다 시와 같았습니다. 그림이 그려진 시화를 보는 듯 느껴졌습니다.
읽는 내내 그 소설속의 말들이 주는 풍성함에 한참동안 책속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때가 되었나 봅니다. 날씨에 따라 몸은 무기력해지고 의욕은 떨어지고 외로움만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계절에 따라 몸이 반응하는 건 오히려 더 민감해지나 봅니다.

요즘 들어 왼쪽 운동화의 끈이 자주 풀립니다.
자주 풀리길래 단단히 묶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운동화가 헐겁게 느껴지면 여지없이 운동화끈이 풀어져 있습니다. 그것도 왼쪽 운동화만 그렇게 풀리네요. '아마 누군가가 제 생각을 하나 봅니다' 꽤나 오랜동안 제 생각을 하는 그 사람이 누굴까 궁금합니다. 햇살을 닮은 사람인가 봅니다. 햇살이 느껴지는 이 가을이란 놈과 함께 오는걸 보면 말입니다. 운동화 끈이 풀리는 게 기분 좋아지는 생각을 갖게 해줌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