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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편혜영, 『재와 빨강』, 창작과비평사, 2010



 편혜영의 『사육장쪽으로』,문학동네, 2007 이후 두 번째 읽게 된 그녀의 작품이다. 사실 『사육장 쪽으로』를 읽으면서 그녀의 문학적 재능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은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을 주기도 하였다.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소설속에서 이야기를 하다 만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재와 빨강』은 첫 장편소설이다. 장편소설의 경우 작가의 공력이 느껴지기 때문에, 조금은 두렵다고 했던 어떤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여성작가이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전작처럼 아주 치밀하다.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아주 농익다고 해야 할까. 뭔가 실마리가 잡힐 듯 하면서도 여전히 긴장의 끈을 유지하며 나가는 힘이 아주 대단하다. 오랫동안 글을 쓰고 단련되어 있는 느낌 그대로다. 소설을 읽고 나서 뒤에 실린 비평문을 읽으며 소설을 되새김질 해보는 것 역시 소설책을 읽는 또다른 묘미이다. 그런점에서 사실 소설뒤의 비평문은 사족 같다. 오히려 책 자체가 가지는 느낌을 죽여버린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왜일까.

"그 일들로부터 수년이 흐른 지금, 그는 덥고도 더웠지만 계속해서 아내를 안고 싶게 한 파란 날개 선풍기 때문에 울 것 같았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음이 떨려 좋은 줄도 모르고 들은 쏘나타 때문에, 지붕에 던져올린, 새가 물어갔는지 쥐가 물어갔는지 알 수 없는 부러진 앞니 때문에, 빨간색 매니큐어가 발라진 발톱 때문에 울 것만 같았다. 지나간 생애가 너무나 사소하고 볼품없어서, 그런 인생에 회환이 느껴져서는 아니었다. 사소하고도 사소한 일로 채워진 현실의 시간으로부터 떨어져나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쩌면 영영 멀어지게 될지도 몰랐다. 그의 불행은 이처럼 사소하고 미세한 생활의 결을 다시 매만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이 그를 짓눌렀다." (p168)

 위 글에서처럼 어떤 현상에 대한 치밀한 심리 묘사가 마치 피를 뚝뚝 흘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선연한 피가 내 몸으로 떨어지며 생채기를 내는 듯한. 아마 그녀의 전작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 또한 이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느낌이 더 강하다. 그가 전처를 죽였는냐에 대한 답은 의미없다. 소설 속에서 그런 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그건 의미없는 일이다. 이건 우리의 이야기며 상처에 관한 기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