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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이윤영, 윤한결과 인디고 유스 북페어 프로젝트 팀 지음, 『가치를 다시 묻다-새로운 시대의 가치혁명을 위하여』, 궁리, 2010


 500여 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책이다. 전문적인 학술서가 아닌 바에야 이 정도의 두께감을 가지고 있는 책을 보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전문적인 이론서가 아니라 청소년들의 프로젝트의 결과물로서는 내용의 충실도가 비교적 높다. 하지만 대상이 불명확하다 보니 지나치게 그 아우라가 넓다. 인디고서원에서 출판한 『주제와 변주』를 읽었을 때 가진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 과연 이 시대의 청소년들이 이러한 주제를 소화할 수 있을까에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필요하고 고민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방기하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가치에 대한 재 평가는 분명히 현실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지니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정의와 희망, 평등과 다양성, 자유와 자기실현, 공동체와 민주주의, 생명과 자연, 아름다움과 사랑이라는 6개의 주제속에서 그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펼쳐놓기도 하고, 책속에서 이름만 듣던 사람들을 만나 협연을 시도한다. 다양한 만남이 주는 충돌속에 펼쳐지는 하모니라고 해야 할까. 노암 촘스키, 하워드 진, 아슈스 난디, 지그문트 바우만등 우리 시대의 석학들과 함께 인비전, 2009 케냐 청소년 평화회의, 기적의 작전팀 전문의 등 자신의 공간에서 가치를 실현하는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나는 무얼 하고 살고 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자기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그 부끄러운 질문 속에서 '어디에서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가' 하는 난제에 가슴 아파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지금 여기'라는 말밖에 없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대답일 수 밖에 없다. 바우만의 말처럼 "완벽한 이상향보다 다소 불완전한 세상이 오히려 더 살아갈 가치가 있습니다. 그 속에는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이지요." 아직 나에게 해야 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가치를 깨닫게 해 준 젊은이들에게 너무 고맙다. 아직 나 역시 젊다는 걸 상기시켜준 그들에게도.

 나에게 있어 좋은 책이란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 나에게 오래 기억되는 사람은 다시 만날 기대감을 갖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아니 그것보다 그 사람과의 다음 만남을 기대한다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그것은 나를 만나는 일이며 그 속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의미일 것이다. 무언가를 받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것을 준다고 해도 보상을 전혀 바라지 않는 태도. 마치 자기와 한몸 같은 사람에게는 뭘 주건 받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드는 것과 같다. 줄 수 있는게 오히려 기쁠 뿐이다. 그렇게 볼 수 있을 때만 우리는 줄 때 받을 생각을 안하며 줄 수 있다.

 책 또한 마찬가지다. 좋은 책은 다음 만남을 기대하게 하는 것. 그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것. 나와 한몸같은 책이기에 받기보다 주고 싶은 마음이 더 드는 것이다. 내가 책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에 내 생활속에서 그 마음을 드러나게 하는 것. 항상 부끄러움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누군가에게 이 책을 권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을 던져 줄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나의 지나친 욕심이자 이 책을 잘 못 읽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책을 던져줄 누군가가 아니라, 이 책을 읽을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지금 여기'에서 '고민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