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발소에 두고 온 시

윤성희, 『구경꾼들』, 문학동네, 2010


윤성희. 개인적으로 기대감과 함께 그의 문체와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근래에 이렇게 빠져 본 작가가 또 있느냐 싶을 정도이다. 그의 전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등을 읽으면서 느꼈던 소름들을 걷어낸다면 이 방을 다 채우고도 남을 듯 하다. 책 표지에 있는 그의 사진을 보면 '나 여기 있어. 나 이렇게 잘하고 있느니 너도 내 등을 한번 두드려주지 않을래' 하는 듯 하다. 윤성희의 첫 장편소설은 김연수의 장편소설을 읽는 느낌과 비슷했다. 단편과 장편이 가지는 호흡과 리듬은 참 다르다. 마치 100m 달리기와 마라톤을 뛰는 선수처럼. 자칫 오버페이스해서 자멸할 수도 있고, 섣부른 도전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작가의 첫 장편들은 그들의 이름에 이제 '작가'라는 호칭을 붙여주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이다. 다음에 나올 소설집, 장편 그 어느 하나라도 책꽂이에 오롯이 꽃혀 있을 듯한 느낌이다.

책을 배송받고 난 3일동안 멍한 상태로 때론 책속에 깊이 빠져들어가 그들의 이야기속에 살았다. 때론 소설속의 주인공에 몰입하기도 하고, 때론 내가 소설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에 빠져 들었다.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예전에 집집마다 벽에 조그마한 공간들이 하나쯤은 있었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붙박이장 정도일테지만. 아마도 벽장이라고 불렸던 그 공간에 들어가 옹송거리며 하오의 시간을 지냈던 그런 느낌들 말이다. 윤성희의 문장은 참 간결하다. 간결함이 주는 문장 사이사이에 느껴지는 행간들은 나보고 알아서 해결하라는 듯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건 오히려 '너도 이런 생각해봐' 하는 배려에 더 가깝다고 해야한다. 참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냥 지나쳐버릴법한 인물들에게도 생명력을 부여하며 '나도 그런적 있어요'하는 말들은 그냥 지나쳐버리기 힘든 울림들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간지를 꽂아 놓는 버릇이 생겼다. 예전에 줄을 쳐놓기도 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줄을 긋는것보다 간지를 꼽는 것이 더 좋아졌다. 책을 읽고 난후 덮으면 간지의 자국들이 손짓하며 다시 한번 이 부분을 읽어보는게 어때하며 유혹하는 손길같다. 그렇다 나는 그런 유혹의 흔적과 몸짓들이 좋다. 소설 속 장면중 기억나는 것중의 하나가 검은색 봉지를 좇아 움직이는 장면이 있다. 그런 감출 수 없는 유혹들이 좋다. 약간의 흥분과 긴장감속에 나를 부르는 그 끈적끈적한 눈빛들이 나를 더욱 자극시킨다. 마치 확 펼쳐놓고 자 여기있어 맘껏 봐봐 하는 것보다는 블라인드 너머로 슬며시 보이는 풍경들이 훨씬 자극적이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준다. 아마 이런 말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변태'이거나 '도착증'에 빠진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난 변태가 맞을지도 모른다. 아니 때론 변태이고 싶다.

구경꾼들. 나나 당신이다 어쩌면 구경꾼인지도 모른다.

마치 주인공인양 으스대지만 어쩔 수 없는 구경꾼인지도.

소설을 읽고 난 후 간지를 꼽아놓은 내용들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하는 것이 더 좋을 듯 싶다. 그래야 조금 더 곱씹어 그 내용을 볼 수 있으리라. 오전중에 책을 끝내고 오후를 즐기는 지금. 홀가분하면서도 마음은 무겁다. 찬 바람이 불어서인가. 문득 누군가에게 짜증을 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