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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윤대녕, 『대설주의보』, 문학동네, 2010



1.

아침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시간이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목요일과 금요일 아침 아침시간을 이용해 읽었다. 아마 목요일 내내 읽었다면 하루에 끝낼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목요일 아침에 단편 3개를 읽고 난 후, 헛헛해진 가슴에 더 책을 읽어 나갈 수 없었다. '떨림'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무기력함'이라고 해야 할까. 옥상에 올라가 담배연기 길게 내뿜으며 지친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이 정체 마를 심연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더 읽다간 머릿속이 터져버리고 가슴이 먹먹해져 하루를 제대로 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2.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내가 있는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보리」), 남편이 있음에도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대설주의보」) 이 외에도 누구나 한번쯤은 아니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법한 이야기들인지도 모른다. 소설속에 나오는 그들의 절박함과 상처들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지 모른다. 그것이 현실이냐 몽상이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늘 일상의 권태로움에 지쳐있는 나에게 그것은 푸르디 푸른 보리밭과 같은 청명함일지도 모른다. 보리밭의 흔들림속에 몸을 내던져 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다.


3.

책을 읽으면서 예전 윤대녕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때를 생각했다. 오랜만에 참 묵직한 작가를 보았다는 느낌. 김연수의 소설을 읽었을 때의 기대감과 비슷하다. 김연수에게 앞으로의 날들이 기다려진다면 그에게는 이제 오롯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것 같은 존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가로서의 윤대녕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성을 굳건히 한 채 멀리 내려다 보이는 장수의 처연한 눈빛이 보인다고 하면 지나치게 주관적일까


4.

나도 그런 사랑을 꿈꾸었다. 경계의 모호함속에 흐려져 있는. 가끔 맑은 하늘을 올려보거나 흐려진 날씨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손등에 떨어질때 느껴지는 감촉들. 그 속에서 난 그런 사랑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갑자기 길을 걷다 그 사람의 마음을 내가 읽었을 때, 혹시 그런 생각 하지 않았나요 물어보며 창밖이 내려다 보이는 찻집이나 술집에 앉아 그렇지요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흐르는 어색한 침묵들. 아주 오래전 오가다 자주 들리는 헌책방에 책을 사러 갔을 때 나에게 말을 걸어주던 그 여자. '왜 말을 걸었느냐'라는 나의 멋쩍은 질문에 '비가 오잖아요'하는 그녀의 무심한 말투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5.

이 책을 건네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도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의 10분의 1만 꺼낸다고 하더라도 '그렇지'하고 나의 생각에 동의해줄 만한 그런 사람. 아니 날 조금이라도 이해해 줄만한 모습이 그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


6.

누구에게든 상처가 있다. 때론 그 상처를 치유하고자 아니 그 상처로 인해 아파하고자 사는지도 모른다. 그 상처가 나를 힘들게 하고 덧없는 공허함에 머리를 저을지라도 가끔은 오디오의 볼륨을 높이고 흘러나오는 커다란 음악소리에 몸을 던지며 목청껏 소리지르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 상처는 바로 당신이 내 몸속에 새겨 놓은 것이다. 생채기 나게 긁힌 그 자국에 붉게 핏물이 배어오고 시간이 지나면 굳은 살처럼 딱지가 올라오겠지. 그 딱지가 새로 올라온 새살에 밀려 떨어져 나가도 내 눈속에 여전히 그 상처가 보이고 내 몸은 그 상처를 기억하고 있다.


7.

오늘은 낮거리가 생각난다. 조그만한 창이 있었던 그 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