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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의 사랑

수연산방, 그, 만남, 전성태

 
 수연산방은 언제나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년여만의 방문이었지만, 변한것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연산방의 변화보다 나의 변화를 찾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수연산방에 들어서는 기분은 한없이 나를 낮추는 기분이다. 상허 이태준 선생님의 흔적 때문일까. 이 곳을 찾게 되면 내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무슨 말이든 귀에 담아야 할 것 같다.

 아직 겨울은 여기 저기에 흔적을 남기고 있고, 봄이 언제쯤 오려나 하며 저 너머에 숨어 시간만 엿보고 있는 듯 하다. 그 흔적 따라 수연산방의 여기저기를 나도 기웃거려 본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자리에는 이미 먼저 자리를 차지한 손님들이 있었다. 이 곳에 오면 모든 손님들이 문인 같다. 문학다방에 수 없이 많은 문인들이 모여 저마다의 이야기꽃을 꾸며대는 듯. 그 속에서 낯익은 사람을 발견했다. 흔히 그렇듯 낯이 익을뿐 딱히 누군지 생각안나는 그런 낯익음. 그 낯익음의 정체가 조금 낯설긴 했지만 늘 그렇든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치게 되었다. 창가에 앉았고 창틈으로 비추이는 햇빛에 한참을 창밖을 보며 수연산방의 정취에 취해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분위기에 익숙해질 무렵 옆자리의 이야기가 내 귀에 들려왔고, 그 소리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blindness 블라인드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처럼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울림들이 있었다.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몽고에 관한 이야기였다. 몽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리를 스쳐가는 전성태의 책 『늑대』.

방현석의 『랍스터 먹는 시간』이 베트남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 책『늑대』는 몽고에 관한 작가의 경험담이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몽고에 관한 아니 소설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고, 그 책의 앞부분에 실려있는 조금은 곱상한(?) 외모의 전성태 그였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즈음 난 그 책을 읽고 있었고 가방속에 그의 책이 곱게 모셔져 있었던 것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기가 막힌 사건들. 살다가 보면 이런 믿기지 않는 우연들 속에 어이없어 할 때가 가끔 있다. 이런 시간의 불일치 속에 생겨진 만남의 찰나들. 우습지 않은가. 나는 그를 알고 보지만, 그에게 있어 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테지.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이란 그렇다. 조금만 관심 가지면 의미있는 것들. 하지만 아무 의미없이 그냥 그렇게 지나버리나 보다. 그래서 조금은 잊고 조금은 미안해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내가 한 말들이, 내가 한 행동이, 내가 지은 웃음이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지. 때론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는다. 그의 손가락의 작은 떨림. 그가 머리를 흔들때마다 느껴지는 약한 살내음. 농담처럼 던졌던 말들까지 내 기억속 세포를 따라 각인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면 각인된 상처는 더 강해지기도 하고, 아무 의미없이 사라지기도 할것이다. 그 몫은 전적으로 그가 아닌 나에게 있다.

사건은 나에게 벌어지고 그 사건의 중심에는 내가 없다. 이 어마어마한 모순의 줄기들이여vulner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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