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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하진, 김연수 옮김, 『기다림』, 시공사, 2007


가을이다. 그것도 아주 눅하게 오래된 느낌이 나는 가을이다. 이제는 '벌써 늦가을인가'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시기이다. 길가에 낙엽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그 낙엽을 밟기도 하고 부딪치기도 하며 사는 때이지. 가끔은 부지런한 경비아저씨가 싫어진다. 바람속에 날리는 낙엽이 보고 싶은데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이미 자루속에 몽땅 담겨져 있다. 낙엽도 쓰레기인 세상이다. '낙엽을 태우면서'란 그 멋진 수필에서 갓 볶은 커피의 냄새가 느껴진다는 그런 향을 이젠 더 이상 맡기 어려운가 보다. 가을이란 그렇게 오래도록 기다려 온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마다 기다리는 계절이 각기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모든 계절이 그 나름대로의 사연을 가지고 있기에 때마다 난 계절을 탄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특히나 봄과 가을엔 주변의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할 정도로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 이럴땐 나의 성적 정체성에 의문을 품을때도 있다.

봄과 여름이 성장과 변화 뜀의 계절이라면 가을과 겨울은 오랜 기다림의 계절이다. 나무와 풀과 산의 변화 그리고 공기의 변화까지 느껴지는 계절이다. 어느덧 옥상에 올라가 노란 단풍잎과 벌겋게 변해버린 나무의 잎들을 보며, 너 여기까지 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잘 차려입은 옷이 아니라, 막 잠에서 깨서 일어나 입고 나온 편한 차림의 옷을 입은 느낌. 그런 가을이 후다닥 하고 지나가면 이제 겨울이다. 겨울은 나 같은 사람에겐 빨리 보내야만 하는 실연의 상처와도 같은 계절이다. 겨울의 그 긴 시간과 아랫목에 늘러붙은 시간들이야 더 없이 소중할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위를 많이 타는 난 겨울이 싫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너무 춥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건 봄이 올거라는 기대감 그리고 여유가 가장 많은 시간이라는 이유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진의 소설은 오랜 기다림에 관한 책이다. 그 기다림속에서 그는 기대했고 꿈꾸었고 그 끝에 무언가 달라지리라 생각했다. 물론 변화는 있다. 그 기다림의 끝에 가져다 준 열매야말로 무엇에 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변화의 끝에 다시 일상이 오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건 정말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기대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이번엔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분으로. 어떤 철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변해야 하는 것은 너의 우리들의 내부에 있다. 어쩌면 외적조건들의 변화는 인간에게 근본적인 변화와 성찰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이겨내야 한다. 어렵지만 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건의 변화에 더 무게감을 두며 살아가고 있는 난 지나치게 어리석거나 바보이다. 절대로 결단코 그것이 나에게 큰 변화를 주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기대하고 기다리기에 난 풋풋하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난 좋다. 그 생각의 긴 터널이 좋다. 지금은 어두울지라도 이 터널을 지나고 나면 저쪽 끝에 밝은 빛이 터져 나올것만 같은 그 느낌. 계속 터널을 달린다 할지라도 이 끝엔 끝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