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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의 사랑

홍상수 감독 , 옥희의 영화

옥희의 영화였지만 나의 영화이기도 했다.

4편의 단편 중 '옥희의 영화'라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뜨악할수밖에 없었다.

가슴 속 아찔한 상처를 도려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 사람과 한 사람이 다른 공간속에서 접점이 연결되는 그 마지막 장면에서 영원히 감추두어야만 했던

'나만의' 비밀을 들켜버린듯한 묘한 감정들.

그리고 매년 1일 1시에 서로를 용서할 수 있다면 다시 만나자는 그 말.

조용히 오래도록 그 추위속에서 손 부비면 떨고 있는 늙은 남자의 한기어린 손과 입김의 상처들이 오롯이 느껴졌다.

그 늙은 남자의 상처는 '키스왕'에서 기다리고 있던 또라이의 기다림과는 같으면서도 조금은 다를수밖에 없는

다른 감정의 진폭과 덩어리들. - 다르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다. 결국은 같은 욕망의 근원속에 있다.

누군가를 설레이는 감정을 가지고 기다려 본 자는 알 수 있으리라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리저리 얽혀있던 덩어리

그리고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곱씹으며 풀어내야만 하는 오랜 시간의 흔적들

그것은 우리들이 가져야만 하는 삶의 무게라는 놈의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사실적이기에 아니 사실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속내를 들켜버린 듯한 순간순간의 장면속에서 혼자 킬킬대며

소름돋는 팔을 쓰다듬으려 그렇게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극장 한 구석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주변의 시선 또한 묻혀버린 그곳에서

두다리를 포개어 오므리고 그 사이에 머리를 쳐박고 한 참을 뚫어지게 파란화면을 바라보았다

파란 화면속의 흔들리는 이름 위에 조용히 내 이름이 흔들거리고 있었고,

오래된 다이어리속 상념어린 메모의 흔적이 거기 그렇게 겹쳐 있었다.

옥희는 영화속에 있고, 어긴가에 있을것이며 내 안에도 음험하게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흘러나오는 피아노 음악소리, 옆에 놓인 커피 한잔, 그리고 담배

글을 쓰고 있는 내 등뒤로 조용히 파란 화면속에 등장인물의 이름이 흔들리며 지나가고 있을것이다

그리고 늙은 남자가 이렇게 말할것이다.

'너 거기에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