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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양혜규,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생성하는 멜랑콜리』, 현실문화연구, 2009


 

다치기쉬움     불라인드룸     치명적인

사랑     추상의공감각     바틀비    사동30번지

포장이라는비밀     행려주체성     열망

맹목적신뢰     적색     충만한감정의요동

쌍과짝     주저하는용기     정치적등장인물

조우의산맥     정치철학     휴일이야기

그림자의연인     펼쳐지는장소     댄디즘

히피디피옥스나드     죽음에이르는병

멜랑콜리     혀없는욕망     부재의공동체

응결 - 뒷표지중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연약하기만 한 인간인지 항상 느끼지 못했다. 물론 용기 있는 인간으로 자부한 적도 없다.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면서 살아왔다고 스스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아닌 것 같다. 나는 때로는 이 때문에 고통스럽다. 달리 살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기존의 형태를 벗어나고 싶다. 약간으로는 힘들다. 멀리 가야 한다. 그래야 뭔가 조금 달라진다.

이런 내 맘을 사람들이 알아챈 건지, 요즘 부쩍 나에게 잠적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많다. 여러 종류의 잠적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말하는 '잠적'이란 말 그대로의 잠적도 있고, 일종의 '단절'도 있다. 인생 혹은 시간의 흐름이 극단적으로 끊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흐름의 절단이 매우 극단적인 까닭에 그 전과 그 뒤에 어떤 연관성 있는 흐름을 꾸려나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잠적과 죽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흔히 생각하기에 죽음이 더 극단적이고 가혹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을 기울인다면 더 끔찍한 것은 잠적이다. 왜냐하면 잠적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중략)

  단 한가지 내 것이 있다면 깊고도 깊은 고독이다. 홀로 있음이다. 고독과 홀로 존재함이 주는 자유란 고통을 나누지 않고 위로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 독점할 수 있는 몫으로 온전히 남겨진다." p108 삼부작: 주저하는 용기

 미술가 '양혜규'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책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국외자이다. 국외자가 가질 수 있는 자유로움이 그에게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국외자가 가지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라는가 망국의 설움같은 것들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에는 편협함이라든가 정형성이 내표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가지는 내용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진 뿌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동 30번지라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우리 내부의 동류의식은 아마 지울 수 없는 영혼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이 가지는 '거리두기'에서 어긋나 있는 이 작품은 바로 우리들 기억속에 있는 또 다른 그리움인 것이다. 난 거기서 어린시절 우리동네를 보았다. 뭔가 정의할 수 없는 그리움과 기억들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느끼는 허허로움 

 창고피스의 경우, 문외한인 나에게도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의하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버리는 물과 같은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 여전히 남아있는 감각들. 그것이 바로 창고피스에서 느낀 이물감들이다.

 그냥 흐르면서 치부해버릴 수 없는 상흔이다. 어렵다 어렵긴 하지만 그의 말처럼 vulerability 하다. 오랫동안 이 단어에 빠져 있었다. 내 내부에 남아있는 그리고 남아있을 vulerability는 무엇일까.

  양혜규의 개인전이 올 가을쯤 열린다고 한다. 과연 그 곳에서 나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보지 않아도 좋다. 다만 그 곳에 내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보다는 이 책을 통해 내가 향유하게 된 상처들을 다시 보듬어 않는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