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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sm

성적 지배와 그 양식들 - note 1



성적 지배의 가장 근본적인 측면은 그의 무의식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적 지배의 가장 근본적인 측면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무의식은 바로 남자의 존재의 심층 속에 자리잡고서 그 존재 자체를 구성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사회들에서는 사랑이란 명목하에 타자의 '타자성'을 부정하고 타자를 자신의 의지에 복속시키려 한다. 즉 사랑이란 명목하에 동일자의 논리를 타자에게 적용하여 타자의 자유를 부정하고 타자를 사물화-사르트르적 의미-한다는 것이다.

남성이 남성답고 여성이 여성다울 때 바로 그러한 ‘…다움’속에서 각각의 성에 따른 행위양식이 수행되고, 그것이 바로 지배에 다름아닌 것이다.

정체성은 존재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이고, 그러한 경우 정체성의 부정은 존재의 부정에 이르게 된다.

나르시시즘이란 결코 자기자신만으로 만족하는 자폐적인 것이 아니다. 나르시시즘은 만족을 위해 타자들을 필요로 한다. 이때 타자들이란 나르시시즘의 주체가 그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타자들로서, 남성에 있어서 그러한 타자들은 경쟁상대로서의 다른 남성들이 아니라 주로 여성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한편으로 자기보존본능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타자의 욕망의 대상으로 설정하기 위한 자기긍정과 자기장식의 의미를 갖는다. 즉 나르시시즘은 타자의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자 또한 타자의 사랑을 받을 만하게 자신을 장식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여자로부터의 사랑의 획득은 남성의 나르시시즘의 무의식적 목적을 구성한다.

인간을 인간 동물로 보느냐 아니면 자기 정신의 주체로 보느냐에 따라 인간에 대한 성의 규정성은 달리 평가된다. 즉 인간을 만약 인간 동물로 본다면 성적 규정성은 결정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의 정신까지도 바로 성에 의해서 규정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젠더(이반 일리치는 전자본주의적 상징적 성좌 속에서 대립적으로 구분된 남성과 여성의 범주를 ’젠더‘라고 칭한다. 그에 따를 때 젠더란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에 와서 희석화되어버린 전자본주의 사회들의 핵심적 조직원리이다)적 구성’의 성격이다. 반면 인간을 그의 동물성에도 불구하고 주체적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간주한다면 성적 규정성은 그의 주체적 가능성 앞에서 별다른 중요성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그의 주체적 가능성은 성적 규정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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