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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이아무개 대담 정리,『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삼인


선생님은 무위당이란 호를 쓰신다. 1970년대에 쓴 호로 우주의 도리에 의해 움직이는 새로운 인간시대를 염원하여 사용하신 호라고 한다. 

1980년대에는 일속자(一粟子)을 쓰셨는데 좁쌀 한 알에도 하늘과 우주가 숨쉬고 있음과 자신을 낮추어 작은 생명의 씨앗이 되시고자 사용하셨던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원주와 인연을 맺었고, 그 원주라는 도시에는 번잡함보다는 고요함이 가득한 도시이다. 치악산의 준령을 느끼기 이전에 포근함과 고요함이 눅어있다. 그런 도시였다. 그 곳에 선생님의 뜻이 담겨 있는 대성학교가 있기에 여전히 토지문학관보다 평원동이 더 생각나는 곳이다.

우연히 어떤 카페에서 선생님의 글을 보았다. 글을 모르는 나에게 그 글의 의미가 주는 느낌보다 더 많은 무언가가 느껴졌었다. 알지도 못하는 자가 한참을 그 글속에 빠져 있었던 생각이 난다

도덕경 이번이 네번째로 기억된다.

하지만 어렵다기보다는 내가 무슨 말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 책을 잘 설명하는 것인지 두렵다.

이번 무위당의 노자 이야기 역시 열흘가량을 공을 들여 읽었지만, 공허한 메아리처럼 머리속에 공명이 생긴다.

'선생님 제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건가요?'라고 물으면 선생님이 이렇게 대답해주실듯 하다.

'그건 나에게 물어볼 말이 아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면 될뿐인걸'

열흘동안 노자와 무위당에 빠져 있었던 것보다, 앞으로 이 가르침을 풀어내야 하는지가 더 어려운 문제인듯 싶다. 작위가 아닌 무위로서 살아가기. 그것은 내뱉지 않음이요, 안으로 머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일테다.

 

 

 

 

 

언제나 말이지, 그 사람이 언제나 '오늘'에서 '영원'을 산다면 말이야, 그러면 언제 어떻게 죽어도 그에게는 허탈해 할 건덕지가 없지 않겠어? 내 생각에는 그게 비결일세.

순간순간을 만족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인가요?

어제도 내일도 없이 그렇게 '영원한 오늘'을 사는 거라

그런 말씀을 듣고 보니 신학생 때 읽은 폴 틸리히의 '영원한 지금'이라는 설교가 생각나는군요. 그분도 비슷한 말씀을 하셧지요.

우리가 쉽게 '내일을 위해서' 어쩌고 하는 말을 하는데 말이지 그 말에 사실은 무서운 함정이 있는 거라. 그 말에 흘려서 '오늘'을 희생하거나 엄벙덤벙 살아가게 된다면 그건 제대로 사는 게 아닐세. 왜냐하면 있는건 '지금'뿐이고 어제나 내일이 사실 따로 있는 게 아니거든. 조선조 말기를 살았던 학명鶴鳴이라는 선사가 계신데 그분의 시에 이런 게 있네.

망도시종분양두  妄道始終分兩頭라
동경춘도사년류  冬經春到似年流나 
시간장천하이상  試看長天何二相고
   부생자작몽중유  浮生自作夢中遊로다

 

이 시를 부산에 계시는 삼락자三樂子 석정石鼎 스님께서 이렇게 옮겨 놓으셨구먼.

 

묵은 해니 새 해니 분별하지 말게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자네 후배라는 그 친구, 시방 의식 불명이라니 참 안됐네만 그래서 지난 날 그가 겪었넌 모든 순간들이 다 무의미하고 허무해지는 건 아니잖는가? 나름대로 그때그때 기쁨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고 뭐냐 하면 지난 모든 순간들이 나름대로 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느냐, 이런 얘길세.

선생님 말씀 알아듣겠습니다. 저도 병원에서 돌아오면서 집사람하고 말을 나누었습니다. 결코 무엇 무엇을 하겠노라고 미리 계획을 세우지도 말고 지난날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미련을 두거나 하지도 말자고요. 그저 날마다 그날 하루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에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두자고,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하루살이 인생을 사는 걸세.

그게 이른바 '종말론적 삶'이지요

맞네. 날마다 오늘이 끝날이라는 그런 마음으로 살면 말이지, 그러면 살아가는 동안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 날이면 날마다 좋은 알인거라.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도 소용없는 것일까요?

그렇게까지 얘기하면 과장을 하는 거지. 고대 내가 말하기를 어제와 내일이 없다고 했지만 그게 왜 없어? 있지. 있지만 말이야 문제는 거기에 얽매이지 말라는 걸세. 얽매이지만 않으면 그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내일에 희망을 갖는 거야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나 그 희망에다가 뭐냐 하면 오늘의 인생을 담보하지 말라는 거라.

알겠습니다.

자네 마음이 아프다고 했지? 

아프지 않을 때까지 아파하게. 안 아프려고 애쓰지 말고. 알아듣겠나? 

자네의 아픈 마음, 바로 그 아픔이 자네의 지금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걸세. 아프면 아파하라고. 때가 되면 아픔이 가시게 될 거야. 왜냐하면 말이지, 아프다는 것도 역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정情에 불과하거는. 정이란 것은 무슨 계기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고 생겨난 모든 것은 반드시 사라기게 마련이라.

 

 

 

말은 될 수 있는대로 소박하게 하는 게 좋지. 자네 표현이 그럴듯한데 조금 말재주를 부리는군.이란 말이 가슴속에 파고든다. 나는 과연 말재주를 부리지 않고 소박하게 말하는가. 자신있는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 속에서 빠져나온는 것이 무위의 길인가.

가슴이 아프다. 아프지 않을때까지 아파하라고 하신다.
아픔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했건만, 아직도 한참 아파야 한다.
그 상처가 덧나고 덧나 터져나오면 그제서야 아픔이 가시겠지
道可道는 非常道요 名可名은 非常名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