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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이원, 김태웅, 신용목, 김민정, 백가흠 : 윤종석, 이길우, 이상선, 변웅필, 정재호 『그림에도 불구하고-글쟁이 다섯과 그림쟁이 다섯의 만남, 그 순간의 그림들』, 문학동네, 2010


풍경에 관한 소고

비가 내린후 시계가 무척 좋은 날. 옥상에 담배 하나 들고 올라갔다. 옥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너무도 시원했다. 바람과 햇볕 그리고 그 속을 가르는 소리의 덩어리들. 주변은 공사판이었다. 하지만 도로 사이에 심어놓은 가로수는 자동차의 궤적을 상쇄했다. 문득 천변으로 시선이 가는 순간. 거기엔 녹색 캔버스가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점점이 찍힌 노랑. 하나의 점 그리고 덩어리짐. 그 노란점들 만큼 시선을 끄는 건 거기에 없었다. 그 캔버스 사이로 이동하는 사람들. 피사체들. 하지만 그것은 피사체이기에 앞서 하나의 기호이자 의미였다.

내 손에 들리워지 책. 그림에도 불구하고. 대학 캠퍼스를 방문한 날. 대학이란 공간이 어느 덧 나에게 추억으로 온 지금. 눈 앞에 드리워진 대학의 낭만은 지나치게 강렬했다. 굴속의 어두움에 익숙해진 채 햇볕아래 내동댕이 쳐진 눈부심. 파란 잔디밭. 그리고 그 위를 지나다니는 자들. 노래. 수다. 웅성거림. 무질서속에 던져진 혼잡함. 그것들을 뒤로 한채 들어간 대학서점. 책들의 무덤. 누군가에게 구해달라고 손짓하는 무덤들의 묘비명 속에서 집어든 책. 그 책에게 나는 구원의 손길. 적당한 가격. 그리고 그 가격을 비웃을만한 책속의 도록. 이것이면 충분했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프로젝트 결과물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기에.

다섯의 젊은 문인, 그리고 다섯의 그림쟁이의 만남. 충분히 매력적인 조합이다. 무엇으로 풀어내든 거기엔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어젯밤엔 피곤한 나머지 오랜만에 진한 숙면에 취했다. 기절(혼절)할 정도로 뻗어버린 나. 정신을 놓아버린 내 육체. 아침. 굳어버린 그리고 화석처럼 몸속의 생각들은 죽어버렸다. 지난 밤의 꿈. 영상. 그리고 만난 사람들. 이미지들. 끊긴 서사와 이미지들. 그 속에서 꽈리를 들고 있는 파편. 하나 하나 바닥으로 떨어지는 꽃잎. 바람꽃. 오랜동안 보이지 않던 그의 모습. 모든 것들이 끊어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기억나는 그의 모습. 그렇게 강렬했던가.

글쟁이 하나, 그림쟁이 하나. 그들의 소통은 일방적이다. 조금은 전투적이길 기대했는데. 밋밋하고 배려만 가득하다. 우리네 문화의 조건은 늘 그렇다. 발톱을 감추고 자신을 드러내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구조화되고 상처받으며 살어왔기에. 내면화된 통제의 기억. 부정하고 싶지만 코드화된 장치속에 버려진 나. 꿈틀대지만 의미없이 버려지고 찢겨진 육체. 의미. 의미의 덧없음. 서로인것. 서로가 아닌것. 서로이며 서로가 아닌것. 서로가 아니며 서로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

무엇때문에 이런 글을 쓰는지 아직 모르겠다. 의미를 던져주면 어느 순간 비눗방울처럼 펑!. 잡으려 하면 펑! 이런 순간에 내던져진 육체. 내 육체 역시 의미속에서 펑!.

책이 읽히지 않는다. 박제가 되어버린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위에만 손 위에서만,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