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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sm

사랑에서 악으로 - note 2


사랑은 무엇으로부터 출발하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확고한 대답을 제시할 수 없다. 사랑은 다양한 계기들로부터 촉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랑은 상호감성, 즉 감성적 상호교류로부터 출발한다. 즉 육체도 이성도 감정도 이념도 아닌, 감각도 성격도 아닌, 감성의 상호교류가 바로 그것이다.

 육체는 단지 욕망의 대상일 뿐이다. 감정은 특정한 방식으로 마음이 현상된 것에 불과하다. 이성은 순수논리적인 메커니컬한 것으로, 사랑을 촉발할 수 없다. 사고의 체계로서의 관념의 교류에 의해 촉발되는 사랑은 자신의 마음을 배반하는 거짓 사랑이다. 감각은 단지 육체적 지각의 산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성격은 세계에 대한 적응 메커니즘이자 일종의 방어장치로서, 외적 세계에 대해 항상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특정 성격의 소유자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있지만 성격 자체만으로는 사랑이 촉발되지 않는다. 반면, 감성은 세계를 느끼고 받아들이는 내적 짜임새이자 분노. 슬픔. 기쁨 등 모든 감정현상을 산출하는 모태이기도 하다. 이러한 감성은 상호교류 속에서 상대에게 흘러들어가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어쩌면 이러한 감성의 교류를 통해 우리는 타자의 '영혼'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의 내적 구조와 상태를 가장 잘 느낄 수 있을것이다.
 
 생각을 해보자.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얼굴이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표정이나 말투를 통해서이다. 물론 우리가 얼굴만을 보고서 타자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 관심이 욕망이 아니라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얼굴을 통해 스며 나오는 그 무엇, 특히 눈빛이나 표정을 통해 전달되는 그 무엇을 매개로 하여 감성적 상호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 말자체가 아니라 말을 통해 스며 나오는 그 무엇, 말투를 통해 전달되는 그 무엇이 사랑의 촉발계기가 되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가 '미'라고 칭하는 애매한 그 '무억'은 결코 객체적인 어떤 것만은 아니다. 객체적인 미는 오직 욕망의 대상이 될 뿐이다. 오히려 사랑의 계기를 이루는 미는 상대의 고유한 주체성, 고유한 감성에 내포된 어떤 특질의 드러남일 수 있다. 즉 그러한 드러남이 나를 끌어당길 때 미적인 것으로 현상한다는 것이다.






 육체적 교류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전달하는 성격을 지니지 못하고 사랑의 상호확인의 어려움으로부터의 출구로 간주될 때, 다시 말해 육체적 교류가 상대를 소유하기 위해 행해질 때, 오히려 내면적 교류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자와의 보다 긴밀한 결합을 위해 육체적 교류를 행하는데, 돌아오는 것은 단지 육체적 만족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육체적 교류를 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그 결과 타자는 완전히 육체로 환원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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