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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의 사랑

넋 놓고 걸어가기

내가 아직 아이였을때

우리 집엔 사람이 없었다.

그 빈 집의 공허함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

문득 집 뒷편의 둑방길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무슨 생각을 해서였을까

햇살은 지나치리만큼 따뜻했고

나의 시선이 가는 곳은 너무나 아늑했다.

걸음을 걷기 시작했고

주위의 풍경들이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풍경들을 이겨내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하지만 빈 집의 쓸쓸함이 주는 느낌보다

지나치는 풍경들의 낯섬이 오히려 날 끌었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걸었고

그 길 끝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평선은 아니지만 한쪽으로 낮은 산들이 나를 포위하고

저 멀리 외딴 집의 할머니는

자식을 위해 저녁을 짓다가 나를 멀거니 바라보더니

잠깐 눈짓한번하고 당신의 일을 계속하셨다.

발은 점점 무거워졌고

처음의 당당한 발자욱이

땅에 조금씩 끌리기 시작할 무렵

내 왼쪽 어깨로 바람이 타고 넘었다.

그 바람과 함께 지나가는 자전거의 바퀴 소리

어깨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아저씨의 시선

어둠이 조금씩 밀려올 무렵

난 발을 더 이상 앞으로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지나온 길을 보니 너무 멀었다.

앞으로 가야하는 기대감보다

내가 뒤돌아 가야할 길이 너무나 멀기에

선뜻 내 발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조금씩 집의 쓸쓸함이 그리워질 무렵

난 어두워진 둑방길을 뒤로하고

조금씩 뒤 돌아 걷고 있었다.

차라리 뒷걸음 치며 걸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후회하지 않으련만


난 그렇게 조금씩 집으로 발을 옮기고 있었고, 어둠이 짙어질 무렵 무서움에 휩싸인 난 도망치듯 뛰어야만 했다. 집이 눈앞에 들어온 순간 난 어미젖을 찾는 어린 강아지 처럼 그 쓸쓸한 집으로 부리나케 뛰어들었고 아무도 반겨주지 않던 집 아궁이에 오랫동안 모아온 딱지를 하나씩 하나씩 집어넣고 있었다. 그 딱지에 불이 붙어 빠알간 빛을 내고, 그을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갈때 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이 매워서 아니 딱지 때문에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난 이제

외딴 산 속에

조용히 들어가

불을 피우고 있다

오랫동안 다시 모아온

딱지를 태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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