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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이용재,『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 플러스문화사.


오랜만에 괜찮은 책을 하나 만났다. 항상 책과의 만남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서점에서 책을 고를때의 머뭇거림과 기대감은 마치 누군가를 만날때의 기다림과 흡사하다. 얼마전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이란 책을 읽으면서 이러저러한 생각의 줄기들을 잡게 되었는데 우연치 않게 보게된 책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은 생각의 부유를 준다.

이 책의 이용재는 건축잡지의 편집장까지 지냈지만, 여러번 망하고 택시운전기사가 된다. 택시운전기사를 하면서 틈이 날때마다 딸과 함께 건축물을 보러다닌다. 이 대목에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홍세화를 떠올림은 너무나 당연한 흐름이겠지.....택시속에는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가 있다. 최성각의 엽편소설 <택시 드라이버>에도 삶의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있다.

우리네 인생이란 그렇다. 어딘가로 목적지를 향해 흘러가지만 그 곳에서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곳을 향해 막연히 나아갈수밖에 없음을. 

여행에 관한 좋은 책들이 참 많다. 눌와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궁궐의 우리나무>는 사대문안에 있는 우리궁궐에 있는 우리나무를 너무도 친철하게 알려준다. 나무들의 위치와 함께 나무에 대한 설명은 감탄을 자아낸다. 이 책을 들고 경복궁으로 덕수궁으로 나들이해보는것도 좋을 듯 싶다. 

몇년전에는 <다영이의 이슬람여행>이라는 책이 알려진 적이 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정다영은 이슬람을 여행하면서 고등학생의 시선으로 이슬람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이슬람학의 대가인 깐수 정수일이 쓴 <이슬람>이 조금은 어렵다면 다영이의 책은 아주 쉽게 읽힌다.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왜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이야기가 자꾸 밖으로 샌다.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인문학적 소양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건축은 건물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건축물은 항상 미완성인 존재이다. 그것을 사용하는 자에 따라 항상 변화하는 '리좀(뿌리)'와도 같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쓴 <천개의 고원>은 이러한 다양한 뿌리의 여행을 잘 보여준다. <천개의 고원> 너무 어렵다.

총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500여 페이지에 달하지만 그 양에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아주 쉽게 재미있게 읽힌다. 딸과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건축과 함께 우리네 삶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성공에 힘입어 2권과 3권까지 나왔다. 3권은 어딘지 모르게 부실함을 지울수가 없다. 2권까지는 꽤 괜찮았다. 예술에 관한 책들이 왠지 모를 무거운 치장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의 경우 솔직함이 매력이다. 그리고 딸과 함께 하는이라는 제목처럼 딸에게 하는 소소한 이야기에 조금씩 빠져 들어갈때가 있다. 이 책에 나오는 가장 많은 말들이 있다. 그건 바로 아트, 인문학적 소양, 세군!. 예술을 정의하는 여러 가지 표현중에서 어찌 보면 ‘아트다’ 하는 말보다 더 솔직한 표현이 있을까. 과연 우리에게 있어 인문학적 소양은 어디까지인가. 내가 꽤 유식하거나 잘난 줄 알았을때 아주 센 사람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비루함이란. 별 말 아닌듯 싶지만 시의적절하게 뒤통수를 친다.

책의 성공덕분인지 아니면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고 있는건지 이용재 본인이 판단해야 할 몫이겠지만 이제 전업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듯 하다. 지금 내 책상위엔 그의 또 다른 책 <딸과 떠나는 국보 건축 기행>이 있다. 초반부를 읽고 있긴 하지만 그의 입심 여전하다. 가볍게 넘어가지만 다시 한번 시간내서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었을 때 언젠가 그 책을 손에 쥐고 답사를 떠날 생각을 했던것처럼 또 그 언젠가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을 들고 여행을 떠나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차다. 그 찬 바람속에 나를 던져두고 내 몸을 맡겨보고 싶다.

가방속에 건축. 도시, 소설에 대한 책이 하나 더 있음을 잊었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