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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최성현 글, 『좁쌀 한알 -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 도솔, 2004







'기억할 만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게 기억되고 있는 여러 가지 중에서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평소에 쉽게 생각하던 것들도 입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들로 맴돌게 된다.

아마 그것은 내 무의식의 저편 어딘가에 분명히 오롯이 남아 있을텐데 그것을 말로 끄집어 내기가 정말 쉽지 않은 무엇일것이다.

원주 봉산동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골목길 구석구석에 지금 내가 사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낙후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가면 사람사는 냄새가 느껴진다.

쌍다리, 귀래(귀례), 길카페, 천변, 양안치고개, 빨래줄, 느긋한 사람들의 표정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내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는 바로 우리 동네의 모습이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놀자~~!' 할것만 같은 곳

그렇게 불러주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기세다.

원주란 그런 곳이다.

그 원주가 내게 기억되는 또 다른 이유중의 하나가 장일순 선생님이다.

물론 책을 통해서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되었지만, 장일순 선생님을 기억하는 분들이 원주에 많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 만큼 그 분이 이 곳에서 의미있는 존재였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너무 먼 그 분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조금은 낯설은 정다움을 느꼈다고나 해야 할까.

조그마한 카페에서 본 괜찮은 글씨를 보고,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장일순 선생님의 글씨라는 걸 알고 놀랐던 그 사실처럼.

책의 내용은 참 소탈하달까. 선생님의 여러 가지 일화와 글들이 실려있다. 하나 하나의 글들이 소박하면서도 투박한 질그릇 같은 느낌이 난다.

백화점에 진열된 그릇이 아니라, 시장통 어딘가에 할머니가 길에 주욱 늘어놓고 파시던 그릇과 같은 느낌들. '너 같은 놈 여기에 오면 안돼'라고 말하지 않고 조용히 손짓하며 살며서 손을 얹어주던 할머니 같은 느낌들이다.

그 갈라진 손에 할머니의 고된 삶이 녹아 있고, 그러면서 그 손은 아픈 배를 어루만지듯 따스함이 한껏 배어 있다. 그 때엔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손이 얼마나 따뜻한 손이었는지 자꾸 생각나게 한다. 오늘따라 할머니가 보고싶다.

"쓸모 없는 나무가 되려고 노력해 왔다. 그래서 이렇게 큰 나무로 자랄 수 있었다."

"저기 군고구마라고 쓰인 글을 보게. 초롱불에 비추게 쓰여진 글씨를 보게. 저 글씨를 보면 고구마가 머리에 떠오르고, 손에는 따신 고구마를 쥐고 싶어지고, 가슴에는 따뜻한 사람의 정감이 느껴지지 않나. 내가 장난 친 글을 보고서도 무엇인가 연상되고 따뜻함이 가슴에 와닿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거든. 결국 저 글씨는 어설프게 보이지만 저게 진짜고 내가 쓴 것은 죽어 있는 글씨야. 즉 가짜란 말이야. 그러니까 내 글씨는 장난 친 것밖에 안 된다는 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