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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두고 온 시

김경애 지음, 현진오 감수, 『이 곳만은 지키자, 그 후 12년』, 수류산방, 2007

 

 수류산방 출판사 이름치고는 꽤나 낯선곳이었다. 하지만 신념을 가지고 의미 있는 책을 출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점에서 검색을 해보았지만 결국 내 손에 들어온 것은 『이 곳만은 지키자, 그 후 12년』 한 권뿐이었다. 우리의 출판문화를 생각해보면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출판문화 뿐 만이 아니라 우리네 삶의 모든 것에서 이런 현상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철저한 기획과 대중들의 기호에 맞게 만들어진 것만 살아남는다. 그들에게 중요한것은 상품이고 자본인것을 어찌할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곁에 의미있는 작업들을 하는 장인들이 있다. 이 출판사 역시 장인의 숨결이 살아있다. 처음에 본 약간 어색했던 표지도 시간이 흐를수록 아니 책의 내용에 빠져 들수록, 혜안이 묻어나온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책의 내용이나 구성 역시 혀를 내두를 정도로 꼼꼼하고 탄탄하다. 올 한해의 책읽기에서 '수류산방'의 책들은 구입목록 위에 있을듯 싶다.

 『이 곳만은 지키자, 그 후 12년』은 제목처럼 12년후의 이야기이다. 다시 방문하기. 추억. 그리고 두려움. 그 두려움속에 내재된 희망. 얼마전 여름에 여행을 다녀왔다. 남도답사기라고 해야하나. 담양의 면앙정, 죽서루, 소쇄원, 송강정을 거쳐 해남 땅끝마을 보길도, 완도, 보성을 거쳐오는 길이었다. 대부분 대학 시절 답사나 여행으로 다녀온 곳들이었다. 10여년전의 추억을 거슬러오르는 '회귀'였던 셈이다. 도착하기 전의 가슴 설레임 이전에 내 머리를 부유하던 생각의 덩어리들은 너무 많이 변해버리지는 않았을까. 그 때의 그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첫사랑을 다시 보았을 때 내가 가진 환상이 깨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같은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장소들이 예전과 다름없음을 보고 앞으로도 '거기에 그대로 있어주어라' 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그 때의 생각들이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생태나 환경에 관한 여러 책들을 읽어 보았지만 그 책들은 대부분 관념이고 추상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 빠져 들어가는 순간 그것은 현실이었고,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미약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작가는 전문가가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여전히 이 분야의 문외한이자 관찰자에 머무른다고 하지만 전문가임에도 머무르는 사람보다 더 생생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때문에 그는 이미 생활인으로서의 전문가에 다름 아니다. 공부를 통해 얻어진것과 생활속에서 얻어진 것은 분명히 다르다. 내 삶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경험이야 말로 생생히 살아 있는 보고인 것이다. 그 울림을 느꼈을 때 비로소 '변화'라는 것을 생각하고 실천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전우익 선생님의 글을 보면 그런 울림이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소박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 커다란 울림이 있다는 것을 보고 느낀 경이로움 새삼 돋아오른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우리 땅에 대한 우리 풀, 나무등 자연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그 사랑이 오롯이 나에게로 온다.

 이 참에 『궁궐의 우리나무』를 다시 한 번 펼쳐보지 않을까 싶다.


마루에서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