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발소에 두고 온 시

권여선 소설,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문학동네, 2010


가을은 야구의 계절이라고 한다.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그리고 한국시리즈로 이어지는 야구의 축제.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옆나라 일본에서. 그리고 야구의 원조겪인 미국에서조차도. 야구를 보다 보면 해설자들의 장황한 그러나 아주 여러 가지 경우의 수 속에서 진행되는 야구의 묘미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실제로 야구란 경기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으면서도 어려운 경기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축구가 남성다운 거친 모습과 함께 단순함의 미학이 거기에 있다. 선이 그려진 네모진 땅위에서 공을 가지고 골을 넣으면 되는 극명한 논리망. 하지만 야구는 점수를 내기 위해 다양한 작전과 개인의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유기적인 조직적 움직임이 함께해야 하는 경기이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미식축구'가 그 중간에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견해이다.

권여선의 소설집은 아주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어찌 보면 그냥 지나칠 법한 이야기들인데 그것을 소설로 녹여내는 작가의 재주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의 일들중에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떤 누구에게는 정말 중요한 순간과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겉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예전에 대학후배를 아주 좋아한적이 있었다. 그 후배녀석과의 좋은 만남을 위해 과 동기들은 나와 그 후배에게 축제 사회를 맡겨 놓았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설레이는 기다림의 순간이었는지. 대본작업을 빌미로. 연습을 핑계삼아 그 후배와 함께하는 시간은 약간의 긴장과 설레임이 함께 한 순간이었다. 고백을 하기엔 나의 심성과 정서가 어찌나 그렇게 물렀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만 하다.

아주 오래 시간이 지난 후, 인터넷에서 우연히 쪽지를 주고 받게 된 그 후배는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가 살고 있었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그리고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해도 웃어 넘길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얼굴을 마주 하지 않고 마우스를 클릭하면 돌이킬 수 없는 쪽지를 보내고 난 후 약간의 흥분이 가미된 긴장속에서 답장을 기다렸다. 다음날 그 후배에게 온 편지. 어쩌면 그리 무미 건조하게 그렇게 보냈었다. '전 몰랐는데. 그 때 얘기하지 그랬어요!'라는 그 후배의 말에 그 동안에 가졌던 그 눅눅한 감정들이 바닥으로 꺼져 버리는 듯한 느낌. 그 숱한 불면의 밤과 떨어지는 가을나무잎에 쓸쓸함을 느끼며 술 한잔과 함께 하며 목청껏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며 절규하던 그 밤들이 과연 그 후배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권여선의 소설들을 읽으며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었던 이야기와 의미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어느 덧 길가의 은행잎들은 노란 제 색을 가지고 있고, 날은 쌀쌀해져 옷깃을 여미지만 그리 싫지 않은 바람에 머리를 맡겨보는 계절이다. 이런 계절에 어울리는 소설이다. 아니 어쩌면